서울, 1964년 겨울 中 - 김승옥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